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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베테랑, 한류 열풍의 초석을 다지다 (스포츠월드 2012.10.7)
  글쓴이 : 아시아문화…     날짜 : 12-10-08 15:05     조회 : 334    
'한중수교 밑뿌리 이야기' 저자 윤해중 전 대사 인터뷰
대만 대표부 대표 시절 류시원 등 한류스타 초청 중화권 한류에 불지펴
  • 한중수교의 비화를 담은 '한중수교 밑뿌리 이야기'책 표지.
     윤해중(67) 전 주타이완(대만) 한국대표부 대표(한국대사에 해당)는 38년의 직업 외교관 생활 중 한류 확산에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1999년 대만에 9.21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119구조대가 6세 된 남자아이를 구해 낸 것을 계기로 타이완인의 반한 감정이 많이 해소됐어요. 한국과의 비즈니스 재개를 서두르는 분위기였고, 제 사무실에도 이들의 내방이 잦아졌습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 수출에 대한 지원을 요청받았는데 대표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프로모션 활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1992년 8월24일, 한·중수교가 체결되면서 우방인 타이완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는 중국과 정식 수교 직전 베이징 무역대표부 창설반장으로 일하면서 한·중수교의 한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런 그에게 1999년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대표 부임은 곤혹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평소 공직관을 바탕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고 한다.

     부임 첫 해에 발생한 9.21 대지진은 타이완인들의 반한 감정을 역전시킨 좋은 계기가 됐다. 평소 공공외교를 중요하게 여겨온 그에게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소재가 필요했다. 그 결실은 한류스타 초청 사인회와 국내 기업 상품전시회 개최였다.

     “문제는 한류스타 초청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인기와 유명도가 있어야 하고 개런티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애국적인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민하던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났다. 문화관광부 차관 윤형규씨였다. 윤 차관과는 도쿄 주일대사관에서 문화담당 공사로 같이 일한 동료였다. 그가 차관으로 영전하면서 “나중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한번 신세 갚겠다”는 말이 떠오른 것. 

    윤해중 전 대사는 2001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한국문물전' 성공을 위해 차인표 류시원 등이 큰 역할을 했다며 이번 인터뷰 기회를 빌어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전 대사와는 종로구 낙원동 한국-인도네시아 친선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제공=한국-인도네시아 친선협회
     “곧 바로 윤 차관에게 전화하고 편지를 보냈더니 희소식이 날아왔어요. 주연급 인기 연예인인 차인표 송윤아 류시원 한재석 가수 유열을 파송하겠다고 말이죠. 더구나 개런티는 신경 쓰지 말고 체재비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 결실은 2001년 10월 2일부터 7일까지 타이베이 뉴욕뉴욕백화점에서 한국 상품과 문화, 음식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한국문물전’으로 나타났다. 윤 전 대사는 “당시 문물전 취소 가능성이 대두될 정도로 흥행 가능성은 매우 비관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가운데도 우리 대표부 직원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연예인들의 애국적인 행동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들은 우리 공무원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경청해줬고 어떠한 상업적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팬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타이완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한국 드라마는 ‘불꽃’ ‘호텔리어’ ‘모델’ ‘가을 동화’ 등이었다. 이들 드라마의 주연급 연예인 5명이 매일 한 사람씩 타이완을 찾아와 팬사인회를 가졌는데, 이로 인해 행사장인 뉴욕백화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류 스타를 초청한 상품전시회가 대성황을 이룬 것.

     이러한 열기는 단교 이후 침체를 보이던 한국·타이완 관계를 일거에 변모시킨 계기가 됐다. 또한 중국 대륙과 홍콩 등 화교가 다수 거주하는 동남아 지역으로 한류가 확산되는 기폭제가 됐다.

     한 전 대사는 “돌이켜보면 우리가 오늘날 대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류의 진원지는 타이완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한류 물결은 당초 중국 대륙 그리고 화교들이 다수 거주하는 동남아로 번져나갔고 이것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당시 타이베이 주재 한국 대표로서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윤해중 전 대사는 중화권 한류 바람의 시작을 담은 이같은 이야기를 ‘한중수교 밑뿌리 이야기-윤해중의 30년 중국 외교 발자취’(이지출판)에 담아 최근 펴냈다.

    2001년 타이베이 '한국문물전'에 한류스타를 초청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윤해중 대만 대표부 대표가 류시원(왼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화권 한류 확산의 마중물 역할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윤 전 대사의 또 다른 자부심은 다문화가정을 돌보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취업차 한국에 많이 와 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낸 사람으로서 이들 자녀들의 아버지 나라를 방문하도록 하자는 계획을 세웠죠. 한국과 인도네시아 두 나라의 실제적 친선관계는 결혼이민자 가정 문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2006년 한국-인도네시아친선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생각했던 구상은 2008년 8월 12일부터 11일간 ‘다문화 어린이 청소년 인도네시아 방문 글로벌 캠프’로 실현됐다. 한국 및 인도네시아계 청소년 28명에게 ‘엄마·친구의 나라’ 인도네시아를 소개하고 인도네시아계 아동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해 주려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엄마의 나라’가 가진 우수성을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 깨달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갖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일반학생들을 데려간 것은 다문화 가정을 올바로 보는 눈을 기르고 국제적 리더십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죠.”

     윤 전 대사는 몇몇 기업의 후원과 자비를 들여 일을 추진했는데, 매년 다문화 캠프를 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다문화 캠프후 많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갖고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다문화가정 문제를 여론화 하는 데 물꼬를 텃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정부단체의 재정적 도움을 받지 않고 있는 입장에서 다문화 캠프를 매년 개최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문화가정 지원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다문화가정 어린이 청소년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사)아시아문화발전센터와 어린이세상 후원(02-3210-0671)에 동참할 수 있다.

     한편 전남 함평 출신의 윤 전 대사는 광주고·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68년 외교부에 입부해 외교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주상하이 초대 총영사, 주일본대사관 공사, 주타이베이 대표부 대표, 주인도네시아 대사,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를 지냈다. 현재는 한국인도네시아 친선협회 회장, (사)아시아문화발전센터 이사장, 중국 인민대 객좌교수로 활동중이다.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