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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외교원로 '상생의 동아시아' 위해 구슬땀 (시사경제매거진 Economy 2012.1월호)
  글쓴이 : 아시아문화…     날짜 : 12-04-17 15:31     조회 : 591    
대한민국 외교원로, ‘상생의 동아시아’ 위해 구슬땀
거대한 잠재력 지닌 아시아권 약진…세계가 주목할 것

문화교류, 외교 관계 발전에 주효
윤해중 (사)아시아문화발전센터 이사장 / (사)한국-인도네시아친선협회 회장

 내년이면 한중수교 20돌을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동아시아는 세계가 놀랄만한 발전을 이뤄냈고 그 가운데에 한국,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2억 3천7백만으로 세계 네 번째의 인구 대국이다. 게다가 매년 450만 명에 달하는 신생아가 태어나는 통계치가 보고된다. 젊은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산업 부문에서 거대한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한국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신흥국의 꽃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친선을 위해 조용히 노력하는 외교계 원로가 있어 화제다. 윤해중 이사장은 현역시절 주상하이 초대 총영사와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포함, 아시아 외교의 굵직한 요직을 도맡으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일조했다고 평가된다.

"중국을 넘어 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 소통을 추구합니다." / 사진:이문중 기자


한·중수교 20돌…아시아 관계 발전 이끌어온 외교 중추
 한반도를 둘러싸고 외교·안보적인 난제들이 산적한데, 동북아를 넘어 국제 정세마저 급변기에 돌입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외교 당국의 노력으로 동북아시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들의 활약이 빛나고 있다. 내년이면 한·중수교 20년을 맞이하게 된다. 본래 중국은 6.25 전쟁을 계기로 한국을 적성국으로 분류, 외교관계를 단절해왔지만, 80년대에 들어와 개혁과 개방, 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천명하며 한국과의 친선과 협력을 선택해 1992년 국교를 수립한 후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국 전체 교역량의 25%가 중국과 이뤄지는 만큼 이제 한국과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와 같은 세월을 돌아보는 윤해중 이사장은 젊은 시절 한·중 수교 성립 이전부터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채널 구축을 위해 매진한 결과 한중 수교 실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내 외교관 생활의 2/3을 중국과 연관된 지역(홍콩, 대만, 싱가폴 등)에서 보냈다. 양국 간 수교가 수립하기 전인 1989년부터 주홍콩 총영사관 부총영사로 근무했는데, 북경에서 상주하면서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우리선수단을 지원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중국에서 공식적인 인맥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미수교 상태이며 체제가 다른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익과 위상을 높인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윤 이사장은 대 중국 외교의 요직을 맡으면서 역량을 증명했다. 주 북경 대표부 대표보(참사관)로 일하면서 한·중 국교수립 실현을 위한 업무에 총 매진한데에 이어 외교부 아주국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새롭게 전개된 한중관계를 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92년 수교직후인 9월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중이 있었다. 당시 나는 외무부에서 한중 항공 협정 조인을 위한 실무협상을 맡아 수차의 회담을 진행해오고 있었던 차였는데 대통령 방중시 체결을 목표로 가서명 단계까지 진전 시키라는 상부 지시가 하달되었다. 그러나 영공이라는 것이 영토와 마찬가지로 국익에 직결되는 사안이라 영공 경계선에 해당하는 비행정보구역(FIR) 확정 문제를 두고 양측 사이에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져 오고 있던 터였다. 그간의 회담에 임하는 중국측의 태도에 비추어 중국측이 우리측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해 올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을 시는 결렬도 불사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후 북경회담에 임하였다. 우리 측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나는 강력한 대처로 일관했다. 당시 중국측은 후일 주한중국대사를 역임했던 우다웨이 아주국 부국장이 배후에서 실무회담을 지휘했는데 나의 단호한 자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어 대통령 방문시 체결은 못했지만 차후 양측이 공히 합리적인선에서 유리하게 타결되었다“며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평소 그는 상대방이 어떤 강대국이더라도 국가 대 국가로서 당당한 자세와 소신을 가지고 인내심을 갖고 임하게 되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 현역 외교관들이 이점 참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인도네시아와의 끈끈한 인연
 2004 년 12월에 지진 해일이 몰아친 인도네시아의 반다 아체. 대규모 재해는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태국, 스리랑카 등 인접 동남아 국가에 인명피해 26만등 큰 재앙을 입혔다. 국제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 이 때 주인도네시아 대사로 있었던 윤 이사장은 현지 주민에 대한 효과적인 구조 작전을 위해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우리 구조단의 파견 및 활동을 지원했다. 당시 건강까지 해쳐가며 인도네시아를 위해 헌신한 점이 당국에 큰 감동을 줬고, 이때부터 윤 이사장과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윤해중 이사장은 “당시 공로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최고 수교훈장(Bintan Jasa Utama)에 추서됐고 친선협회 조직을 부탁 받았다. 인도네시아는 잠재력이 큰 국가이다. 우리가 갖지 못한 폭발적 인구 성장력과 풍부한 자원, 다양한 문화를 갖추고 있어 한국의 훌륭한 파트너가 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우리 기업 진출이 활발해지는 한편, 문화적인 상호교류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한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우리 영화배우들도 인도네시아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

“체계적 외교시스템이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든다”
 윤 이사장은 주상해 초대총영사를 지내며 쌓아온 인맥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활성화 시키고 있다. 상해시 당 위원회 선전부 예하 기관인 대외문화교류협회와 MOU를 체결하는가 하면, 상해시장 등 유력인사들과 돈독한 인적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수교 20년을 내다보는 현재 한중관계는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수교 상태에서 수교상태로 전환이 절실한 시기에는 우리가 중국의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야하는 면이 적지 않았으나 이제와서는 호혜협력, 상호존중 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중국측의 무리한 요구나 양보는 시정되어야한다.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이나 자치단체장들이 중국과 친분과시용으로 경쟁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과의 외교에 있어 이제는 정당한 국격을 갖춰야함을 강변했다. 이어 그는 “대만도 우리에게 주요한 협력대상이다. 중국과의 수교후 지나치게 대만의 존재를 과소평가하는 태도에서 탈피 대만과 인접 아시아 제3국간 관계 등을 감안하는 등 균형 잡힌 수준으로 관계정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나라다’라는 인식을 줘야 하는 것”이라며 평소 소신을 제시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성공적인 유치지원
2007년 4월초 인천광역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제17회 2014년 아시아경기 대회를 유치하는데 인도 뉴델리와 경합이 치열하니 중국측의 협조가 필요한데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윤 이사장은 1997년 인천광역시 초대 자문대사로 6개월 재직한 인연이 있던지라 흔쾌히 수락하였다. 4월 10일 북경에 도착 90년 북경 아시안게임시 구축했던 인맥(국가체육위원회 웨이지종 고문 등 수명)을 동원 중국의 지지는 물론 중국의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홍콩, 마코오의 지지도 확보하는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쿠웨이트에서 최종 투표결과 압도적 다수로 뉴델리를 누르고 인천유치가 확정되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였다.

Profile

학력
1968. 2.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1977. 10. 화란 사회과학원(ISS) 국제관계발전학과 석사과정 이수

경력
1968. 9. 외무부 입부(70. 2. 제3회 외무고시)
1971. 9. 주 홍콩 총영사관 부영사
1979. 3. 주 싱가포르 대사관 1등 서기관
1981. 11. 외교부 동북아 2과장(중국담당과장)
1984. 2. 주 일본대사관 참사관
1987. 4. 외교부 동북아 2과장(중국담당과장 2차 역임)
1990. 1. 주 홍콩 총영사관 부총영사(북경 상주 아시안게임 우리선수단 참가지원 업무총괄)
1990. 11. 주 북경 대표부 참사관(한·중 국교수립 업무총괄)
1992. 1. 외교부 아주국 심의관
1993. 3. 주 상하이 총영사(초대)
1996. 9. 인천광역시 국제관계 자문대사
1997. 1. 주 일본 대사관 공사
1999. 2. 주 대만 대표부 대표
2002. 3. 서울시 국제관계 자문대사
2003. 5. 주인도네시아 대사
2005. 6.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2006. 5. 외교통상부 정년퇴임
2006. 6. 사단법인 아시아문화발전센터 이사장
2006. 9. 사단법인 한국-인도네시아 친선협회 회장
2006. 9. 외교통상부(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2007. 6.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재단 자문위원

서훈
1990. 12. 한국정부 체육훈장 기린장(1990. 한·중 국교수립 이전 북경 아시안 게임 우리선수단 참가 관련 총책임자로서 업적 인정)
2006. 6. 한국정부 황조근정훈장
2006. 7. 인도네시아정부 최고 수교훈장(Bintang Jasa Utama)

lee@economym.com